2018년 2월 12일 월요일

# 갑을위한나라 # 검찰갑편

[알쓸신잡][쇼핑몰/입점/정산다툼] 을의 자세로 바라보는 세상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변호사는 의외로 '을'이라는 사실이다.
의뢰인에 치이고 사장님에 치인다.재판하면서 판사에 치이고 수사과정에서는 검사에, 경찰에 치인다.현장조사를 하면서 가게 사장님들과 증인에게 조아리며 피의자를 위해 증언해달라고 빌고, 사실 확인서 한장 써달라고 부탁하고, 증인들의 태도가 바뀌면 또 찾아가서 빌고.
뭐 누구나 어디서는 을의 포지션이고 어디서는 갑이겠지만. 여튼 변호사라는 직업 자체는 갑질할 일이 거의 없는 직업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법대 다닐때의 농담처럼 얘기하자면 법이 있으니 그나마 이렇게 살고 있지 법없으면 벌써 큰일 당할 사람 중 하나 인 것이다.
근데 요즘은 법이 약자의 편이 아니라는 이야기들이 많이 돌고 있다. 이른바 헬조선론이다. 재판이나 사건 사고에 대한 댓글들을 보면 이 나라 법이 왜 이 모양인지에 대한 한탄이 넘친다. 이 나라가 헬조선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늘 을의 포지션에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점이 하나 있다. 권력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기울기를 완화시키는 방향으로 국가권력을 작용하는 것이 국가의 당연한 의무일텐데 이 나라의 법원 검찰 등의 국가기관은 반대로 그 기울기를 더 깊게 만드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거다. 요새 말로 하면 "국가는 갑편이다?"
지금 진행 중인 사건 몇 개를 예로 들 수도 있다. 
백화점이나 대형쇼핑몰 같은 경우, 물론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입점업체가 매장 인테리어도 하고 운영도 하고 점원들 월급주고 4대보험도 든다. 심지어 매장 포스 기계, 카드단말기도 모두 입점업체가 구입해서 유지 관리한다. 재고 부담도 당연히 입점업체에게 있다. 
다만, 현금이건 카드건간에 모든 매출은 일단 백화점 측으로 일단 들어가고 일정기간단위로(주로 월 단위다) 백화점측에서 자신들의 수수료를 공제하여 정산한 돈을 입점업체에 지급한다. 

그렇다면 퀴즈.
여기서 정산전 입점업체 매출금의 소유자는 누구일까?
백화점은 수수료를 제외한 입점 업체의 돈을 보관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수수료고 뭐고 몽땅 전부 백화점의 돈인 것일까?
사안은 이렇다. 
백화점(은 아니지만 편의상 백화점이라고 하자)에서 입점업체에 대해서 어느 날 갑자기 정산을 안해 준다.이유는 "백화점이 어려워서 그냥 전부 써버렸다"다. 입점업체들이 수십개가 넘으니 그 금액은 수십억이상이다.
입점업체들은 자기 물건 자기가 팔아서 결제만 백화점측으로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다 써버려서 니들 줄 돈은 없음. 데헷>하고 당당한 백화점이 기가찼다. 당연히 입점업체들은 백화점측을 고소했다.하지만 검사는 "금감원에서 이런 경우 백화점 소유라고 하네. 지 돈 지가 썼는데 횡령, 사기가 뭔 말인가요? 그러니 혐의 없네요" 하고 백화점측 손을 들어줬다.
모든 비용, 관리, 운영, 심지어 재고와 판매에 대한 책임도 을이 지고 갑은 수수료를 받는 계약인데 정작 판매한 돈은 갑의 소유가 맞다는 거다. 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얘기인데 이곳의 국가기관들은 당연히 그렇게 안내하고 있고 당연히 그렇게 돌아가고 있다.
이걸 일반 법감정에서 이해할 수 있는 논리가 있다면 "이 곳은 갑을 위한 나라야"라는 논리 단 하나 뿐인 거 아닐까?
입점업체가 아무리 전부 다 투자하고 열심히 벌어도,
백화점에 돈이 꽂히는 한 백화점이 정산해 주기 전까지는 입점업체 돈이 아님.
이것이 헬조선 방식
혹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입점하시려는 분이 있다면 참고하시라.
에고.. 쓰다 보니 너무 길어진 듯 하다.하고 싶은 신세한탄은 좀 더 있지만, 일단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