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 냥줍주의 80년대물가 # 보호감호

[판례] 냥줍 주의사항! 런닝샤쓰 임시집사의 평원닭집 고양이 사건

날도 추워지고 마음도 추워지는 계절입니다.
상투적인 이미지일 수 있지만 따뜻한 곳에서 졸고있는 고양이의 모습이 참으로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날이 추워지면 냥줍사건(?)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데요. 길거리 고양이들이 추위에 지쳐 자유로운 생활을 포기하고 눈에 띄는 호구 닝겐을 골라 자기를 키우라고 명령하는 경우가 종종 있나봅니다.
너! 내 집사가 되라옹
오늘은 맨날 성범죄다, 강간이다, 성매매다 하는 흉흉한 범죄에 지쳐 다소 귀여운(고양이가 등장한다고 다 귀여운건 아니지만) 고전 판례를 소개하는 포스팅을 할까 합니다. 바야흐로 고양이들(뿐만 아니라 모든 동물들이)이 괴로운 계절이고 이 계절이 지나면 본격 냥줍의 계절이 되니 미리 준비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입니다.
저희 블로그를 찾아오시는 분들이라면 역시나 고양이를 데리고 오기 전에 고양이의 소유권을 확인하는 등 불시에 발생할 수 있는 법률 분쟁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항상 어떤일이든 주의하시는 습관을 가지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일시 도주한 동물의 경우 점유이탈물 횡령죄가 적용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가는 습성이 있다면 버려진 개라고 할 수 없고 절도죄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하셔야겠습니다. 

복잡한 세상입니다. 돌다리를 두들기면서 건너듯 무슨 행동을 할때마다 변호사랑 상담해야 하는걸까요. 어쨌든 이런 흉흉한 세상에서 이런 점을 무시한 분이 오늘의 판례에 등장합니다. 주인공이신 분이 냥줍같은 것을 한 것은 아니지만 고양이 절도 시비에 휘말려서 꽤나 고생을 한 사건입니다. 이른바 '평원닭집 고양이 사건'입니다. 예전에 고시생들이 '형사판례백선'이라는 책으로 판례공부들을 많이 했었는데, 이 책을 쓰신 교수님이 머리속에 쏙쏙 들어올 수 있도록 주요 판례마다 별명을 붙이셨습니다. 각종 국가시험 공부를 하신분들이라면 많이들 알고 계신 사건인데, 사건의 별명에 고양이가 들어가는데다가 좀 옛날스럽게 '평원닭집'이라는 상호도 소개되고 해서 좀 귀엽다는 느낌이 들지만 사건 당사자에게는 끔찍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사건 번호는 대법원1983.9.13. 83 도 1762이며 대법원 종합법률정보 사이트에 가서 보시면 판례 전문을 열람해보실 수 있습니다.)
glaw.scourt.go.kr
사진은 내용과 관계없는 고양이입니다
사건인즉슨, 1982년 8월 어느날 밤에 어느 시골마을 평원닭집앞 길에서 그곳 평상 밑에 있던 고양이를 피고인이 런닝샤쓰(판례 원문의 표현입니다 ^^)안에 집어넣고 가는 것을 닭집 주인이 쫓아가서 되찾아 오게 됩니다.주인공은 고양이 주인이 나타나자 고양이를 돌려주었는데 경찰서에서부터 계속해서 일관되게 그날 다른사람에게 빌렸다가 잃어버린 고양이라고 생각했다고 주장합니다.(판례내용: ~피고인은 경찰이래 원심공판정에 이르기까지 피고인이 이건 고양이를 들고 간 것은 사실이지만 절취할 의사로 가져간 것이 아니고 그날 피고인이 다른데서 빌려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린 고양이인 줄로 잘못 알고 가져가다가 주인이 자기것이라고 하여 돌려주었을 뿐이라고 일관하여 범의를 부인하고 있고~") 일관성, 중요합니다! 판결문에 일관성이 언급되었을 정도면 판결에 분명히 영향을 주는 요소입니다.
빌렸다가 잃어버린 고양이라고 생각해 런닝샤쓰 안에 넣고 가다가
주인이 돌려달라고 해서 돌려줬는데 절도로 몰려 대법원까지 가게 된 주인공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고양이 한마리가 뭐라고 대법원까지 간건가 하고 궁금해하시는데,(이런걸 기소한 검사는 좀 문제일지도) 판결문을 보면 피고인이 기존에 상습절도등 전과가 여러차례 있던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심 판결에서 보호감호 10년 처분을 받게되었는데 저라도 많이 억울했을것입니다. 보호감호 처분은 지금은 없어진 제도이지만 판결에 의하지 않고 상습범죄 저지르거나 저지를 위험성이 있는 사람을 가두어두는 제도 입니다. 즉 고양이를 훔치려고 한것도 아니고 잃어버린 고양이인줄 알고 가져가다가 돌려주고 돌아왔을 뿐인데 10년동안이나 갇혀있을 처지에 놓이니 극구 무죄를 주장하며 끝까지 법정투쟁을 벌이게 된 것이죠.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절도죄에 있어서 재물의 타
인성을 오신하여 그 재물이 자기에게 취득(빌린 것)할 것이 허용된 동일한 물건으로 오인하고 가져온 경우에는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이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범의를 조각하여 절도죄가 성립하지 아니한다~"라고 하면서 원심법원에 파기환송을 하게 됩니다.학술적인 의미로는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이 없다 즉, 고의가 인정되지 않아 애초에 절도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고 이는 '구성요건해당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비슷한 생활속의 예로 색과 생김새가 비슷해서 자기우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자기 우산인 줄 알고 다른사람의 우산을 들고 간 경우를 들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오늘의 주인공은 다시 평화로운 삶을 되찾게 되었습니다.(잘은 모르겠지만) 만일 민사 사건화 되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판결에서 인정된 사실관계를 놓고 본다면 '고의'에 의해서는 민법 제 750조의 불법행위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아 피고인의 책임이 인정되지 않겠지만 자기 물건이라는 점을 잘 살피지 않은 '과실'이 인정된다면 고양이 값이나 우산 값을 물어줘야할지도 모릅니다. 
고양이 값이라고 하니 여담으로 쓸데 없는 호기심이 생깁니다. 
판결문에 나온 1982년도 8월 당시 "고양이 1마리 싯가 7,000원"은 얼마정도의 가치인것인가가 궁금해져서 당시 물가자료를 알아보았습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1982년과 2016년 사이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약 3.5배정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통계청 자료는 일반인들이 느끼는 체감물가라기 보다는 정책 수립용 자료에 가까워서 저에게는 잘 와닿지 않습니다. 지금 당장 시골 장터에 가서 강아지나 새끼 고양이 1마리를 24,500원에 달라고 하면 구하기가 힘들거라는 생각도 듭니다.(생명을 돈주고 사고판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 가지시는 분들 있는 것은 잘 알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여담으로 여겨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좀 공감이 가는 자료를 구해서 계산을 해 봤습니다.
대략 여기에 나온 숫자에 10을 곱하면 생활 물가랑 비슷해보이지 않나 싶습니다.그래서 당시 7천원은 지금 돈 7만원정도의 가치랑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어떤가요... 2017년 장터에서 강아지나 고양이 1마리 7만원정도 주고 데려온다면 어느정도 납득이 될 것 같은데요. 중요한건 지금 가치로 따져도 돈 7만원에 누명을 쓰고 감호처분 10년을 받을 뻔 한 사람의 억울함을 공감할 수 있느냐입니다. 어떠신가요? 어쨌든 결과적으로 닭집 고양이도 원래주인에게 돌아가고 피고인도 무죄를 받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사건의 결론은 이 뿐만이 아닙니다.



결국 피고인에게 고양이를 빌려준 사람이 7천원 손해입니다.(보석상이 손해가 아니고?)   
그래서 제목 이미지에 쓰지 않았나요. 고양이를 빌려주면 이렇게 된다... 하고 말입니다.고양이... 빌려주지도, 빌리지도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