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 강제추행 # 강제추행처벌

[판례] 강제추행죄 해석을 둘러싼 대법원 판례


이곳은 성희롱 주식회사 신입사원 환영 회식자리.  
 
1)
김응큼 부장은 이번에 자신의 부서로 배속된 신입사원 이불쌍에게 "너 앞으로 회사생활 순탄하게 하고 승진도 하려면 누구에게 잘 보여야 되는지 알지?"라고 하면서 이불쌍의 가슴과 엉덩이를 주물렀습니다. 

2)
같은 회식자리에서 신입사원 박대범은 자기 부서의 직속상관인 최예쁨 팀장에게 "팀장님 너무 예뻐요. 팀장님 같은 여자 안아보는게 소원이었어요."라고 하며 은근스리슬쩍 최예쁨의 가슴과 엉덩이를 주물렀습니다.  

그렇게 주물렀다간... 감옥으로 가버렷!

자, 김응큼과 박대범은 이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럼 누가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할까요.     
상사를 추행한 박대범보다는
직속부하를 추행한 김응큼 부장의 죄질이
더 나쁘고 더 큰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부하를 추행한 김응큼은 업무상위력등추행죄로 처벌 받으며 법에서 정한 형량은 2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반면 상사를 추행한 박대범은 제추행죄로 처벌되는데 법에서 정한 형량은 10년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이하의 벌금입니다.  
  
어떠한가요? 신입사원일때는 조용히 있다가 승진을 하면 추행해야 하는 걸까요?승진을 하더라도 나보다 상사에게는 절대로 개기지 말라는 의미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한마디로 상사가 부하를 추행하는 것이 부하가 상사를 추행하는 것보다 훨씬 가볍게 처벌되고 있는 것입니다.(하극상을 싫어하는 나름 헬조선답다)  
적용 법조문
법정형
상사가 부하를 추행
업무상위력등추행죄
2년이하 징역 / 500만원이하 벌금
부하가 상사를 추행
강제추행죄
10년이하 징역/ 1500만원이하 벌금
 이게 법이 잘못된 거냐하면 제 생각에는 그렇지는 않다고 봅니다. 이런 문제(그러니까 상사가 부하를 추행하는게 더 가벼운 처벌조항으로 처벌되는 문제)가 발생한 원인은 사실 처벌규정의 미비를 대법원이 무리하게 해석으로 보완하려다 보니 일어난 일이라는 생각입니다.
형법 제298조 (강제추행)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강제추행죄는 '폭행 또는 협박으로 사람에 대하여 추행을 한 자'를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걸 엄밀히 해석하면 '폭행 또는 협박'을 매개로 해서 추행해야지 강제추행으로 처벌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편 현재 처벌규정에는 단순추행죄가 없습니다. 즉 폭행이나 협박 없이 기습적으로 가슴을 만지고 튀거나, 회식자리에서 스리슬쩍 가슴을 만지고 엉덩이를 만지는 단순추행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규정이 없습니다.  죄형법정주의에 의할 때 엄밀하게 얘기하면 박대범의 행위에는 폭행 협박이 없으므로 강제추행죄로 처벌 할 수 없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법감정이나 뭐로 보나 타인의 가슴과 엉덩이를 주무른 박대범을 그냥 용서하기는 어렵습니다. 처벌할 필요가 있는 행위임에는 분명합니다. 

이분은 판례를 궁금해하는 평범한 아저씨일 뿐입니다. 오해없으시길..
여기서 대법원은 기가막힌 꼼수(유권해석이라고 읽고 꼼수라고 부름)를 내놓습니다. 강제추행죄의 폭행과 협박을 겁나 참신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강제추행죄는
상대방에 대하여 폭행 또는 협박을 가하여 항거를 곤란하게 한 뒤에
추행행위를 하는 경우 뿐만 아니라

폭행행위 자체가 추행행위라고 인정되는 경우도 포함되며,
이 경우의 폭행은 반드시 상대방의 의사를 억압할 정도의 것임을 요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

(출처 : 대법원 2012.06.14. 선고 2012도3893 판결[아동·청소년의성보호에관한법률위반(강간등)·치료감호·부착명령] > 종합법률정보 판례)
핵심은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는 유형력의 행사가 있는 이상 그 힘의 대소강약을 불문한다' 바로 이 문구입니다.  이렇게 해석함으로써 강제추행죄는 그 제목이나 조문 내용과는 상관없이 강제력이 개입되지 않은 일반추행 행위에 대해서도 처벌할 수 있게 되었고, 실제로 수십년간 그렇게 처벌되어왔습니다. 
갑자기 가슴을 만지면 가슴에 대한 유형력 행사(신체접촉)가 있었으므로 강제추행뒤에서 어깨를 감싸안으면 어깨에 대한 유형력 행사가 있었으므로 강제추행
강제추행은 단순 추행보다는 당연하게 훨씬 나쁜놈들을 처벌하는 규정입니다. 때리고, 공포감을 느낄 정도의 협박을 하여 상대방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고 추행을 하는 행위에 대한 규정이며 강간과 매우 유사한 범죄 상황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슴 한번 만졌다고(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절대) 강제추행죄를 적용하다보니 다른 처벌 규정과의 형평이나 균형이 무너지게 된 것입니다. 죽지 않을 정도로 사람을 패고 고문하면서 추행을 한 범인과 술에 취해 상사의 엉덩이를 한번 주물러본 것이 같은 카테고리로 묶이고 같은 범위내에서 처벌을 받습니다.(물론 처벌수위가 다르긴 합니다) 남의 가슴과 엉덩이를 만지는게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그 정도로 흉악범죄인걸까요?
  한편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는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죄가 따로 있어서 이에 따라 부하 직원을 추행한 사람을 따로 처벌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부하직원을 추행한 상사는 강제추행이라는 무서운 카테고리로 묶이지 않습니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0조(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①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즉, 원래 입법과정을 유추해 보자면 아마도 강제추행죄는 폭행, 협박을 수단으로 하여 추행하는 경우를 처벌하도록 만들고, 업무상 위계 관계에 있을 경우에는 폭행, 협박에 못 미치는 위계 위력만 동원해도 처벌하도록 만드는 대신 동원한 수단의 불법성이 약하니 형량을 적게 하는 방향으로 입법을 하였을 것입니다.  지하철 추행같은 공중밀집장소에서 발생하는 추행의 경우에는 그 상황이나 장소의 특성상 일반 추행으로 처벌하되 유형력을 이용하지 않았으므로 매우 가볍게 처벌하도록 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을 것 입니다.  
그런데 실수였는지 의도였는지는 모르지만 입법과정에서 단순추행죄를 만들지 않았고, 그로 인해 처벌할 필요가 있는 단순추행을 처벌할 수 없게 되자 대법원이 해석으로 처벌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법체계를 무너뜨리는 해석을 하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제일 흉칙하게 생긴 매로 살살 맞으면 된다?
초인종을 누르고 도망간 녀석과 문을 문지방째로 뽑아버려 완전히 못쓰게 만든 녀석이나 똑같이 '문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가 있었으므로 같은 매로 때린다는 논리입니다. 초인종을 누르기만 한 녀석은 법원이 알아서 살살 때리면 될테니까요. 그렇지만 법조문 자체에 대한 엄격한 해석을 요구하는 형사법을 이런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는 법원이 단순 추행 사안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처벌할 법률이 없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원칙상)하고 입법부에서 처벌 법률을 개정하거나 새로 입법하도록 하는것이 바람직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정이 있어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채 수십년이 지났고, 제가 예로 든 처벌의 불균형과 무리한 해석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제 이런 모순을 해소하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법에서는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일정한 요건이 되면 법률이 위헌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습니다.
법무법인 바움은 다년간 비슷한 사건을 다루면서 이 부분의 모순에 대해 늘 고민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헌법소원을 제기해놓은 상태입니다. 결과가 아직 나오진 않았지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뀌기를 기대해봅니다. 그간 처벌한 수많은 추행범들의 소급효 문제가 있기 때문에(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법무법인 바움의 헌법소원 활동에 대해서도포스팅해보겠습니다) 법원이 쉽게 위헌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전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도 이미 공감하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결론이 어떻게 될까요.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