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 과잉방위 # 국가주의사고

[판례] 정당방위! 정당하니? 논란이 되는 정당방위에 대한 판례의 태도

안녕하세요.오늘은 요즘 핫한 이슈인 정당 방위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몇년 전 사건인데 계속 회자되고 있는 사건이 있습니다. 거실에 침입한 절도범을 때려서 뇌사에 이르게 됐는데 집주인에게 징역 1년 6월형이 선고된 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누리꾼들은 남의 집에 침입했으면 그 정도 각오는 했어야 하는거 아니냐, 왜 집주인에게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는거냐고 흥분했지요. 기억하실지는 모르지만 소위 빨래 건조대 정당방위 사건입니다.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661302.html
또 비슷한 사례로 집에 침입한 괴한의 쇠파이프를 빼앗아 역으로 괴한을 폭행한 집주인에게 정당방위 인정이 되지 않아 집행유예가 붙어 있긴 했지만 유죄 인정이 되어 징역이 선고된 일도 있었습니다.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2/10/29/0200000000AKR20121029122400055.HTML
그럼 도둑을 말로 물리치라는 거냐. 심지어 쇠파이프는 집 주인이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빨래 건조대라는건 무기도 아니고 손에 잡힌 걸로 방어 한거 아니냐 등 말이 많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의아해하셨을 것입니다. 이런 판례는 다음의 질문을 동반하기 때문입니다.
긴급할때 내가 나를 지키는 것이 범죄라면
강도를 만나면 이러지 마시라고 정중하게 부탁이라도 해야 하는건가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당방위란 당한 것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합니다. 초딩 시절 "니가 먼저 때렸으니 난 정당방위", "이건 정당방위에 대한 정당방위", " 이건 정당방위에 대한 정당방위에 대한 정당방위" 하면서 주먹을 주고 받는 방식으로 우정을 키워온 분들이 있으셨을 겁니다. 유치하지만 정당방위라는 말에 대해서 알게 되는 꽤 어린 시절에 우리는, 당한 만큼 갚아 주는 것을 정당방위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가 들면서 사적인 복수를 하다 걸리면 문제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사이다는 어디에 있는거냐!!하고 때론 가슴을 치고도 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고구마 백만개를 먹어도 포기할 수 없는 생각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란 마치 정의의 사도처럼 내가 위급할때 취할 수 있는 최종 선택이 될거야. 그리고 모두가 그 정당성을 인정해줄거야. 하고 말입니다. 물론 그 상황이 되고, 실제로 강도에게 고소를 당해서 법원에 가기전까진 몰랐을 것입니다. 그 모든 공상에도 불구하고 정당방위가 인정되는 사례는 드래곤, 만티코어나 여친같이 전설에나 존재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반사!
우선 정당방위에 대한 형법 조문을 보시겠습니다.
형법 제21조(정당방위) ①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부당한 침해를 방위하기 위한 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②방위행위가 그 정도를 초과한 때에는 정황에 의하여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③전항의 경우에 그 행위가 야간 기타 불안스러운 상태하에서 공포, 경악, 흥분 또는 당황으로 인한 때에는 벌하지 아니한다.
아름다운 조문입니다. 손에 닿을 수 없어서 아름답다고 했던가요... 
초딩때 상상하던 아름다운 세상이 사실은 온갖 더러움으로 넘쳐나듯, 초딩때 상상하던 정의의 정당방위는 현실에서 거의 인정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많은 분들이 주거침입자를 사살해도 정당방위가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의 예를 들면서 분통을 터뜨리기도 하구요. 
일단 위의 두 사건에서만 독특하게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정당방위 사건에 있어서도 대법원의 태도는 정당방위가 인정이 되기 위해서 매우 많은 단계의 심사를 거치도록 하고 있습니다.심지어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피의자가 정당방위임을 주장할 때, 경찰에서는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경찰은 비교적 힘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미리 이렇게 필터링을 하고 사건을 검찰에 올리겠죠? 이런 식으로 검찰, 재판 등을 순서대로 거치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정당방위라고 하는 주장은 반박을 당하게 됩니다. 정당성은 점점 쪼그라들어버리고, 내 몸을 지키기 위해서 방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저 범죄자에 불과한 취급을 받게 됩니다.
경찰청 내부 지침이 형법 조문보다 더 까다롭게 구는 것처럼 보인다면 기분 탓입니다.
법원에 무사히 도착한다고 하더라도 정당방위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또 많은 요건이 있습니다. 침해의 현재성이라든지, 침해의 부당성이라든지, 상당한 이유라든지... 아무튼 꽤나 복잡합니다. 형법 교과서를 줄줄이 외우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정당방위 상황에서 일일이 계산해서 '수사단계에서 정당방위를 주장하기 위해서 이러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방위행위를 해야지.'라고 마음먹는다면 한 두가지 빼먹는것이 반드시 존재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속설에 의하면 정당방위가 되려면 몽둥이로 때리지말고 긴급해 보이게 이빨로 물어라 같은 것들도 있는데 쉽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수사단계에서 하나하나 조사하면서 피의자가 주장하는 정당방위 요건을 제외하다보면 현실에선 거의 인정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사단계에서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해서 결국 기소가 되는데 재판까지 거치다보면 남아나는 것이 거의 없을 지경이고 실제로 대법원 판례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은 예가 거의 없습니다.
대법원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한 사례란 고작 일방적 폭행에 대한 소극적 방어 사건에 한정되어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닙니다.
- 함께 술을 마시다가 가슴을 발로 차는 등 폭행을 시작한 상대를 피해 술집 밖으로 나왔는데, 폭행자가 따라나와서까지 폭행하려는 걸 막으려고 껴안거나 멱살을 잡아 흔든 정도 (1986.10.10, 89도 623)
- 술집에서 소란을 피우던 폭행자가 의자로 팔을 내리치는 등의 폭행을 했을 때 이를 막기 위해 
손과 멱살을 잡아 밀친 정도(1996.12.23, 96도2745)- 자신의 차에 억지로 타려고 하면서 바지춤을 잡아 당겨 찢고 끌고 가면서 넘어트리는 상대를 경찰이 올때까지 양 손목을 약 3분간 잡아 누른 정도(1999.6.11 99도943)
겨우 이따위인데도 심지어 대법원까지 가야 겨우 정당방위라는 판결을 받아낼 정도입니다. 생각만해도 분통이 터질 노릇인데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복잡한 판단을 거쳐야 정당방위를 인정하게 만들었을까요?
정당방위? 인정 안하겠다는 거에요~~.
네 그렇습니다.정당방위를 인정을 안하겠다는 소리입니다. 네? 무슨 얘기냐구요?

일단 우리 형법은 독일의 고전주의 형법을 베이스로하는데,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범죄자라도 교화가 가능하며 자연법적 천부인권을 보장받아야한다는 이념을 기반으로 세워진 형법입니다. 많은 분들이 심한경우 3천년씩 징역을 때려버리는 미국같은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의 형벌이 솜방망이라고 투덜대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 형법이 가해자에게는 너그럽고 가해자 인권보호에는 열심인데 피해자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쪽인 것은 일단 그 토대에 '사람은 고쳐쓸 수 있고, 고쳐써야 한다'란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정당방위나 긴급피난 같은 긴급 행위는 개인이 공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건을 해결하는 사적 해결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적 해결은 형사책임을 논하는 단계에서 위법성 조각사유에 해당합니다. 위법성 조각사유란 일단 형사처벌 규정에 해당되는 행위를 하였지만 사회전체의 법질서에 비추어 불법성이 없으므로 죄책을 묻지 않도록 하는 사유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살인은 했지만(형사처벌 대상), 그 나쁜놈이 칼을 들고 날뛰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잖아(가해자에 의해 망가진 전체 법질서가 오히려 방어행위로 인해 평화를 되찾음) 같은 판단을 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저 뒤의 판단, 그러니까 위법성 조각사유에 대한 판단은 쉽지 않습니다. 먼저 공격한 놈과 이를 방어하느라 공격한 놈 중 누가 더 나쁜 놈인지 가려내는 일입니다만 국가로서는 개인의 권리행사와 사회 질서의 안정이라는 두 가지 가치질서의 비교 형량에 따라 적절한 지점을 찾아야 하는 작업입니다. 대부분의 정당방위가 쌍방폭행으로 결론나는 것은 물의를 일으킨 니네 둘다 나빠라는 판단이 깔려 있습니다. 당한 사람 입장에서 억울하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다소의 절차를 무시하더라도 개인의 권리를 지켜내고 억울한 사람이 없다면 그것으로 된것이다 라고 생각하면 정당방위를 폭넓게 인정할 것이고 사회 질서의 안정이라는 가치를 높게 친다면 '어허! 경찰이 올때까지 기다려야지 왜 네가 줘 패니?'라는 식이 되어 정당방위를 제한적으로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지점에서 균형점을 찾는가 하는 것은 어떤 사회나 국가가 어떤 점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는 문제이므로 그 사회의 전통과 습속같은 것들이 녹아있는 문제가 됩니다. 
긴급행위를 넓게 인정하게 되면 개인의 권리 보호가 강화되지만 공권력에 의하지 않은 사적 보복을 정당화 하게 되어 사회 질서가 어지럽혀지는 결과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예가 그렇습니다. 미국은 태생적으로 개개인이 자유를 찾아서 개척을 한 나라입니다. 특히 미국역사의 초창기에 개발의 전초기지 지역은 정부의 행정력이 충분치 않다보니 나라 전체에 충분한 치안을 제공할 수 없어서 개인에게 무기를 소지하는 것을 천부인권으로까지 선언하고 헌법에 명시를 하였습니다. 개인이 무기를 비교적 자유롭게 소지하다보니 무기로 인한 범죄가 생길 수 밖에 없고, 이를 막기 위해 자기 방어를 위해 너도나도 무기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의 방어권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정당방위를 폭넓게 유지 시킬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 총기 협회의 노력도 굉장하지요. 실제로 미국의 총기 규제는 매 정권마다 뜨거운 감자였으며 인종대립만큼이나 첨예한 갈등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당방위 이념을 뒷받침해주는 총기 소유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엄청납니다.
 반면 그 반대쪽 극단에 있는 사회를 들 때 우리나라를 어렵지 않게 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사적 구제를 굉장히 좁게 인정하는 사회중 하나입니다. 대신 우리나라가 치안에 관해서는 손꼽히는 나라에 속하는 것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공권력의 위상은 이렇듯 상당히 강한 편이며 반면에 (아시겠지만)개인의 권리는 쉽게 무시되는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사적인 보복을 막아서 공권력을 통한 사회질서의 안정을 우위에 두고 있는 사회입니다. 즉 개인의 자유와 같은 인권요소보다는 질서의 안정성을 더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정당방위 성립 범위가 좁아 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법원은 왜 이렇게 사회 질서의 안정에 우위를 두는 판단을 하고 있을까요?우리 사회가 질서유지와 사회 안정을 더 중요한 가치라고 누가, 언제 합의했길래?
그것은 제 좁은 소견으로는 우리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시대의 일본의 사법제도를 그대로 계수했고 오랜 군사독재를 거쳐 왔습니다. 개인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보다는 어떻게 국가가 개인을 통제해서 말을 듣게 할까를 오래동안 고민해 온 셈입니다. 그리고 정통성과 정당성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억압하게 마련입니다. 누군가가 정당성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고 시끄러워지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에는 국가주의나 관 우위의 사고가 굉장히 뿌리깊게 박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사법제도 역시 그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개인이 얼마나 행복하게 사는지 보다는
어떻게 국가가 개인을 통제해서 말을 잘 듣게 할까를 오래동안 고민해 온 셈
정당성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할 수 밖에 없어
즉 '가만히 있으라'로 대표되는 관 위주의 사고가 정당방위를 제한하는 관행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친일부역자 문제를 해결하고, 자유와 인권이 보장되는 바른 민주 국가로 나아가려면 이렇게 뿌리깊게 자리잡은 우리 머리속의 생각과, 그 생각이 들어가 있는 제도까지 뜯어 고치지 않으면 안됩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많은 사건들을 겪으며 우리 사회는 이제 그러한 가치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당방위에 대한 판례의 태도에 관한 오늘의 포스팅, 그리고 많은 누리꾼들의 정당방위 판결에 대한 분노는 질서유지와 사회안정보다 개인의 자유가 더 중요한게 아닐까? 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문은 언론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거 아니야? 국가가 그걸 통제하면 안돼. 나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는거 아니야? 정부비판 좀 하면 안되는거야? 하는 질문들과 맞닿아 있습니다.
법원 역시 그저 과거의 방식대로 기계적으로 판결할 것이 아니라,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관편의주의 사고와 권위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우선해야 하는지, 우리가 나아갈 방향이 어디인지, 사법시스템은 어때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양심을 가지고 이를 통해 판결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사법제도가 적폐가 아닌, 사회의 중요한 가치를 지키는 모두의 동반자가 되기를 법률가의 한 사람으로서 희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