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18일 월요일

# 동거남녀강간 # 동거남녀강제추행

[정변의기묘한모험][준강간 집행유예] 연인간 준강간 사건

안녕하세요. 오늘도 야근하는 정변입니다.(사장님 나빠요)

국정원 특활비 사건으로 매일 뉴스가 시끄러운 요즘입니다. 요즘의 양상은 마치 누가 누가 더 빨리, 더 자세하게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면서 자백을 하나..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면 양형에도 좋은 결과가 있겠지 정도의 마음이 있는걸까요? 아니면 검사들이 이렇게 얘기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게 좋은거라고 협조하면 조용히 끝낼 수 있게 해주겠다."  시간이 좀 있을때 미국의 범죄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곤 하는데 미국의 범죄영화나 테러를 소재로 하는 드라마에서 보면 이러한 플리바게닝이라는 것이 등장합니다. 주로 피의자나 피고인이 더 큰 범죄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더 거물의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한 핵심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경우, 정보를 주고 자신의 형을 감소시키거나 무죄를 받아내는 등의 거래를 하는 경우입니다.
여러분도 수많은 영화에서 이미 경험하셨겠지만 꼭 증거를 통해서만 거래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소를 담당하는 검사측에서 충분한 입증을 하지 못하는 경우, 배심원앞에서 무죄를 받아서 피의자를 걸어나가게 하는 것 보다는 유죄 인정을 조건으로 형을 줄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하는 경우에도 이 형량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물론 이런 경우 눈치 빠른 변호인의 빠른 거래제시가 필요합니다만)
대통령 사면을 원한다는 테러범과의 유죄 협상을 스토리상 30분안에는 끝내야 하는 잭바우어(변호사도 아니면서)
플리바게닝은 우리말로 하면 유죄협상제도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나날이 지능범죄화되고 증거수집이 어려워지는 수사 환경에서 사회적 비용을 많이 줄이기 위한 미국의 형사재판절차에 존재하는 제도로 우리나라에는 없는 제도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유죄협상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증인보호프로그램이 없는 우리나라에선 증거(증거라고 쓰고 목숨이라고 읽는다)를 내놓고 거래를 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또한 검사의 입증책임이 미국 배심원제하에서의 재판처럼 엄중하게 요구되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우리나라에 도입하기에는 대다수 일반인들의 법감정에 반한다는 점이 최대의 걸림돌입니다.(나쁜놈들이 형량 거래를 하고 그냥 다시 사회에 나온다고?)
하지만 그냥 없는 제도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가끔 수사관들이 마치 미드에서나 나올 거 같은 식으로 피의자들을 꼬시기 때문입니다. "자백하면 잘 봐주겠다"... 뭐, 제도적 보장도 없고, 힘도 없고 빽도 없는 보통의 피의자들은 이런 말로 회유 당해서 자백한다고 해도 말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다수이긴 합니다만.
서론이 길었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저의 개인적 오해일 수도 있지만.. 수사관이 자백을 꼬시기위해 하는 말 말고 우리나라에도 암묵적 의미에서의 플리바게닝은 존재할지도 모른다는 추정을 해 본 사건을 소개할까 합니다. 
다시 한번 덧붙이지만 제가 재판장님의 말을 과대해석하고 오해한 것일 수도 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사건의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습니다.김씨(남성, 피의자, 의뢰인측)는 자신보다 훨씬 어리고 상당한 미모를 소유하고 있는 박씨(여성, 동거녀)와 교제를 하다가 동거를 하게 되었습니다. 박씨는 철이 없어서인지, 미모때문에 꼬이는 남성이 많아서인지 동거 전 교제중에도 끊임없이 남자로 인한 트러블이 있어서 김씨의 속을 상하게 했다고 합니다.그러던 어느 날 박씨에게 축하할 일과 위로할 일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단 둘이 밖에서 술을 마시게 되었고, 또 2차로 어느 바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김씨는 지인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으려고 잠깐 바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고 들어 왔는데, 들어서는 순간 박씨가 어떤 남자와 끌어 안고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울러 그 둘의 키스를 바에 있는 사람들이 지켜보며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당연하게도 김씨는 매우 분노하였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대로 아무말 없이 혼자 집으로 들어와서 화를 내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이런 장면 비슷했던 것 같다
김씨는 새벽에 박씨가 들어오는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고 합니다. 박씨는 만취해 있었고 아무 말도 없이 김씨 옆에 누워 그대로 곯아떨어졌습니다. 김씨는 계속 화가 풀리지 않았던 상태였고 박씨의 만취 모습을 보고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습니다. 김씨는 만취로 거동할 수 없는 박씨의 옷을 벗기고 성관계를 했고 이 장면을 촬영했습니다.(그 전에도 합의하에 몇차례 이러한 촬영이 있었다고 합니다) 동영상에서 박씨는 술에 취해 곯아떨어져서 전혀 반응을 하지 않고 있고, 김씨는 마치 스포츠를 중계하듯 여자에 대해, 그리고 현재 하는 행위, 기분에 대해 해설을 했습니다. 자신의 얼굴을 비추며 "나는 누구고, 이 여자는 누구인데 이 xx같은 x이..." 등... 이 정도 설명했으면 동영상 내용은 다들 상상 가능하실 것입니다. 동영상에 나온 모습은.. 여튼 확실히 정상적인 성관계는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렇게 찍은 동영상에 대해 김씨는 박씨에게는 비밀로 해 두었습니다.
어찌저찌 그날 일이 넘어가고 시간이 또 어느 정도 흐른 어느 날, 갑자기 박씨가 집에 들어 오지 않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김씨가 동거녀와 함께 살던 집에 돌아와보니 박씨의 짐이 사라져있었습니다. 김씨는  박씨가 워낙 남자관계가 복잡했고 그 문제가 계속 되었기 때문에 인생을 함께 할 동반자로까지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버림 받는 형태로 끝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 결과 김씨는 박씨에게 한번만 만나 달라고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정리는 하고 헤어져야하지 않겠냐는 말에 겨우 박씨를 만나게 되긴 했는데 박씨와의 만남의 자리에 여자는 새로운 동거남을 대동하고 나타났습니다.
일방적 이별도 납득하기 어려웠던데다가 한번만 만나달라고 애원하는 사이 자존심이 많이 상했던 김씨는 마지막 한번의 만남이라는 자리에까지 새로운 동거남을 데리고 등장한 박씨에 대해 극도로 분노하게 되었습니다. 이성을 잃고 거리를 방황하다가 김씨는 위의 문제 동영상이 있음을 기억해냈고, 동영상을 박씨에게 보내게됩니다. 그리고 이를 유포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네 김씨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이러한 일련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합니다) 박씨는 재빠르게 고소를 진행하였고 김씨에겐 1심에서는 준강간, 카메라이용촬영, 협박에 대해 모두 유죄가 선고되어 실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여기서 의뢰인인 김씨의 누나가 저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입니다. 누나는 어떻게든 실형만을 면해 줄 것을 원했습니다.
평소 남자관계가 복잡하던 동거녀의 소행에 분노한 피고인은
동거녀가 만취한 틈을 타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해 두었고
한참 지나 일방적으로 동거관계가 청산되자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동영상으로 (전)동거녀를 협박하여
1심에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이 사건의 핵심은 준강간의 성립여부였습니다.
준강간이 유죄로 인정되면 합의되지 않는 한 실형은 불가피해 보였습니다. 반면 준강간이 무죄면, 카메라이용촬영의 경우 그 전에도 몇 차례 합의하에 성관계 동영상을 촬영한 적이 있다는 점에서, 협박의 경우 실제 유포하거나 유포할 의사는 없었다는 점(동영상에서 김씨 자신의 얼굴과 신원까지 다 공개한 상황에서 이를 유포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습니다) 등을 어필하면 집행유예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 같은 경우 준강간죄를 구성하는지는 실제로 의문이었습니다. 동거하는 연인 사이에서 준강간이 성립할까요? 준강간은 항거 불능에 빠진 상대에 대한 강간입니다. 준강제추행은 만취 등 항거불능에 빠진 상대에 대한 추행입니다. 직접적으로 폭행이나 협박을 통하여 상대방을 반항 불가능할정도로 제압하는 강간이라면 성립할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가 아니라 자고 있는 연인이나, 만취해있는 연인에 대한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이 성립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동거를 하면서 수시로 성적인 접촉을 갖는 남녀 사이라면 서로간의 성적인 접촉에 대해 포괄적으로 양해가 되어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수시로 성적인 접촉을 갖는 동거하는 사이에서 성적인 행위를 할때마다 일일이 묻거나 동의를 얻어야 하는걸까요? 만약 동거하는 연인사이에서 준강간죄가 성립한다면 마찬가지로 준강제추행죄도 성립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잠든 연인의 가슴이나 성기 등을 만지는 행위, 만취해 들어온 연인을 씻기거나 옷을 벗기면서 만지는 행위 등이 전부 준강제추행죄가 성립된다는 결과가 됩니다. 이게 성립된다면 동거중인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라고 하더라도 남자쪽은 헤어지거나 사이가 나빠졌을 때 연인이나 아내가 준강간이나 준강제추행을 이유로 나를 고소하지는 않을까 경계해야 하는 셈입니다. 복수 포르노 처럼.. 복수 강간고소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질 지경입니다.
따라서 저는 이것은 말도 안되는 고소라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이 사건에서 김씨와 박씨는 그 동영상 사건의 날 헤어지거나 그날 있었던 관계를 준강간이라고 하면서 결별한 것이 아닙니다. 그날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는 다툼조차 없이 사건 이후로도 둘은 상당기간 연인관계를 유지했습니다. 사이좋을때의 양해가 있었던 일이 헤어지면 소급하여 준강간이 된다?박씨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도, 박씨에게 준강간이라는 팁을 준 박씨의 변호사나 기소한 검사의 생각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고 김씨가 마냥 잘했고 억울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준강간에 대해서는 분명 파고들 여지가 있어보였습니다. 
동거를 하면서 수시로 성적인 접촉을 갖는 남녀사이라면
서로간의 성적인접촉에 대해
포괄적으로 양해가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지 않을까?
같이 살면서 모든 성적 행위에 동의를 얻는 것은 현실적으로 말도 안되는 얘기
여튼 저는 그래서 이러한 내용을 요지로 항소하여 첫 공판기일에 출석했습니다.
그러나 첫 공판기일 놀랍게도 부장판사는 저에게 위와 같은 
무죄 주장을 철회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아무래도 민감할 수 있는 문제라 재판부가 판단하기 곤란해 할 것이라는 예상은 했으나 철회를 종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상당히 당황스러웠습니다. 물론 저는 재판부의 권유를 거부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처음에는 법리적인 문제로 재판부와 설전이 오가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고 이러한 생각을 재판부에 말했습니다. 이례적으로 상당히 긴 시간동안 법률과 보호법익, 범죄의 구성요건, 대법원의 태도 등 법리적 문제에 대한 설전이 오갔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부장판사가 "변호인 말은 다 알겠는데, 그럼 이렇게 해서 피고인에게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냐"는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피고인에게 유리할 거 같니?
준강간에선 무죄를 받아야만 이 케이스가 잘 풀릴거라고 생각했던 저는 이 말을 이해를 못하고 한동안 계속 법리적인 주장을 반복하였습니다. 하지만 재판부와의 논의는 위의 대사를 기점으로 법리의 문제가 아니라 '변호인이 말을 못 알아 듣는다.', '정말 지금 이렇게 하는게 피고인을 위한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저를 힐난하는 쪽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얄미운 시누이 같은 검사는 부부강간죄를 신설하자는 움직임이 나오는 마당에 변호인이 이렇게 주장하다니 「변호인의 성의식에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며 저를 인격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을 하면서 저를 울컥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그 때는 잠시 순간적으로 흥분하여 법정에서 시장판 멱살잡이 싸움을 할 뻔도 했습니다만 어릴때 얘기입니다 큼큼)
이렇게 일방적으로 몰리고 흥분하다가 갑자기 번쩍! 계시(?)가 내려왔습니다. 혹시  '말귀를 못알아 듣는다'는 구박이 '무죄 주장 철회하면 집행유예 해 주겠다는 얘기인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재판부에는 "그렇게 말씀하시니 한 기일 더 주시면 숙고하여 철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게 되었습니다. 재판부는 "그렇게 하시라"고 하면서 마지막까지 "정말 피고인을 위한 길이 어떤 것인지 잘 생각해 보라"며 피고인을 위한 길을 강조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서 곰곰히 생각하면 할 수록 재판장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법리적 문제를 다투기 위해서 대법원으로 간다고 해도 대법원에서는 양형을 다툴 수 없으니 어차피 양형은 최종적으로는 항소심에서 정하는 것인데, 준강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인정할 수 밖에 없었고 그에 따라 유죄가 선고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등장한 카드.. 누가보면 도박사인줄 알겠다
법률가로서 저의 입장은 연인간 준강간죄에 대한 법리적 판단을 받아 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의뢰인을 위해 영혼을 파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그것을 위해 의뢰인의 인생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당시 상황으로서는 무죄 주장을 철회하면 집행유예 해 주겠다는 것이 재판부의 의중일 거라는 (이것도 역시 별 근거 없는) 감에 의지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고민 끝에 준강간죄에 대한 무죄 주장을 철회하였고 그와 같은 사정을 양형에 반영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재판부는 정말로 집행유예를 선고해 주었습니다.
의뢰하였던 피고인의 누나는 선고를 듣자마자 전화하여
울먹거리며 감사를 전했습니다.

서두에 말씀드렸듯이 재판부의 의중을 제가 잘못 파악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죄 주장의 철회와 상관 없이 준강간에 대한 법리나 동영상 촬영 당시 남자와 여자가 동거중인 연인관계였다는 사실, 유포할 마음이 없었다는 점 등을 순수하게 주요 양형요소로 판단하여 그러한 판결이 내려졌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당시 분위기 또한 지금과 마찬가지로 성범죄에 대하여 양형이 매우 중하던 시기였던 만큼 
준강간죄를 유죄로 인정하면서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건 매우 이례적인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김씨의 사건은 여기까지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직도 연인간의 준강간을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입니다.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이런 법리적 판단을 대법원에서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뢰인의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했던 제 결정에 대해서 결코 후회는 없습니다. 민사는 돈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법률가로서의 욕심을 부려볼 여지가 있겠지만 형사사건은 보통은 누군가의 인생이 걸려 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번 사건처럼 변호사로서 자존심이 상하거나 의뢰인을 위해 신념을 굽혀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연인사이의 준강간과 준강제추행..많은 분들의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정말로 검사의 말대로 저의 성의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걸까.. 가끔 마음에 걸리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