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 강간무고 # 무고

[정변의기묘한모험] 무고의 이유(하)

가끔 광고도 넣어보자
안녕하세요법조계에서 기묘한 모험을 하고 있는 변호사 정수인입니다.
지난 포스팅에 이어 오늘은 무고를 당한 김씨의 이야기의 나머지를 할까 합니다. 어쩌면 이번 이야기가 이 글을 혹시 보게 될 무고를 당한 억울한 분들에게 가장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사건의 김씨는 변호사가 옆에 있었는데도 지옥에 갔다 왔습니다. 만약 변호사도 없었다면 김씨는 어떻게 됐을까요. 
김씨와 상담 후 저는 김씨의 진술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직원에게 현장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김씨와 이씨가 갔던 3차와 4차 맥주집의 직원과 사장이 김씨를 알아보았고 3차 맥주집의 알바생은 "당일 비가 많이 와서 손님이 적었기 때문에 당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여자가 많이 울었고, 김씨가 많이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가 김씨가 화를 내며 나갔고, 이씨가 바로 뒤쫓아 나갔다.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밖을 보니 이씨가 편의점에서 나와서는 김씨에게 다가가 매달리면서 뭔가 부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김씨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하면서 맞은 편 호프집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cctv는 3차 맥주집의 사장님이 안계셔서 알바생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4차 맥주집의 사장도 "이씨와 김씨는 들어와서 맥주 한잔씩을 시키고 얼마 안있어서 나갔는데 별다른 소란은 없었고, 사이좋게 함께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텔사장은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았습니다. 그런 일도 있는 법입니다.
여튼 현장에 보낸 직원으로부터 전화로 이러한 보고를 받은 저는 바로 사건을 수임하기로 하면서 현장에 있는 직원에게 3, 4차 맥주집 직원과 사장의 진술서를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놓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동안 현장 조사와 수사과정에서 증언이 바뀌거나 입을 닫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김씨는 갑자기 회사에서 긴급체포되었습니다.
김씨가 체포된 날 재판이 많았던 저는 오후 6시쯤에야 피의자가 체포되어 있는 경찰서에 도착하였고 그 때부터 시작된 피의자신문에 참석했습니다. 당황스러울정도로 수사기관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김씨를 모욕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김씨가 먼저 경찰에 고소된 것이 있는지 확인한 것과 그것을 확인하고 미리 변호인을 선임한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네가 잘못한게 있으니까 고소된 게 있는지 경찰서에 확인해 보려고 한 것이고, 변호인도 미리 선임한 것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맙소사...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입사한지 몇 년 안 된 젊은 미모(불필요하지만 이쁘긴 정말 이뻤습니다)의 재원이었고, 김씨는 보통 사람들은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을 졸업하여 현장직으로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애 딸린 아저씨였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이 점을 건드리며 김씨에게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저렇게 어리고 똑똑하고, 연봉도 높은 미모의 아가씨가 너에게 눈길이나 주었겠느냐. 합의하에 모텔로 갔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니 주제에 언감생심 저런 아가씨를 건드리려고 했느냐" 등입니다.제가 이를 지켜보면서 형사들에게 항의해 보기도 했지만, 그때만 반짝 주춤했지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으로 봤을때 형사의 말이 아예 틀리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수사를 하는 형사는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입니다. 아직 혐의가 확정된 것도 아닌 피의자에게 이런식의 모멸감을 주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피의자신문을 1차로 마치고, 바로 이씨와의 대질이 이어졌습니다. 이씨는 지난 포스팅에 쓴대로 김씨의 진술  전체의 내용을 부인하였습니다.

이씨의 이러한 주장을 듣고 저는 미리 받아 놓은 3, 4차 호프집 직원과 사장의 진술서를 그 자리에서 제출하였습니다. 3차 호프집에 cctv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진술서 내용이나 김씨와 저의 주장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괴로웠습니다. 경험상 이런 반응이면 당연히 다음날 영장을 청구하고 그 다음날 오전에는 영장실질심사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2박 3일이 될 것이 눈에 선했습니다. 


대질 신문까지 마치자 자정이 다되었습니다. 저는 경찰서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과 함께 3차 호프집으로 갔습니다. 사장님은 알바에게 들었다면서 우리를 반겼습니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조금 전에 형사들이 다녀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사장님에게 변호사한테 진술서 같은 거 써주지 말라고 하면서  그거 다 법에 걸리는 거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경찰은 사장님에게 변호사한테 진술서 같은 거 써주지 말라고 하면서
그거 다 법에 걸리는 거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은 사장님에게 "CCTV를 보여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은 "거짓말도 아니고 있었던 일 써주는게 뭐가 걸린다는 거냐"고 하면서 "지금 협박하는 거냐"고 찾아온 형사들과 한바탕을 했고 CCTV를 보여달라는 요구에는 "보고싶으면 영장을 갖고 오던지 하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보통 이런 경우 증인들은 수사기관의 협박을 받고 변호사나 그 직원들을 멀리하게 마련입니다. 형사들이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장님이 너무 고마웠고, 김씨가 그나마 복이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장님께 부탁하여 CCTV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김씨와 이씨가 술을 마신 자리는 CCTV의 사각이라 이씨의 등만 보였습니다. 다만, 출입구는 정확하게 찍혀 있어 이씨가 중간에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면서 밖에 나갔다 온 장면, 김씨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계산하고 나가는 장면, 김씨가 호프집을 나가고 난 후 이씨가 황급히 호프집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한편 4차 술집은 형사들의 방문이 잘 먹혔들었는지 사장님은 더 이상 협조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예상 대로 그 이틀 뒤 영장실질 심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씨의 진술과 제3자의 진술 및 CCTV 내용이 상당히 다르고 오히려 김씨의 진술이 이들과 부합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사건 현장은 유흥가로 늦은 밤에는 택시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기때문에(밤늦게 현장에 가본것이 주효했습니다) 이씨의 말대로 이씨가 4차 호프집에서 강제 키스를 피해  뛰쳐나가 도망가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면 김씨가 술값을 카드결제하고 쫓아가는 사이 충분히 택시를 타고 출발할 수 있었으며, 모텔의 규모가 작아 이씨가 소리지르고 저항했다면 모텔 주인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더해 3차 호프집 사장님에게 들은 것을 토대로 수사기관이 변호인의 증거 수집을 위법한 방법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도 힘을 주었습니다.
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경찰은 "우리 망했다. 고추가루 친 거까지 다 들통났다"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경찰이 김씨에게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뻔히 보이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위법하게 증거 수집을 방해하면서까지(소위 고추가루를 치면서까지) 무고 사건을 끌고가는 이유가 뭔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영장 실질 심사가 있던 그날 저녁 2박 3일 동안의 유치장 신세를 끝내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씨는 반년이 넘게 두어번의 검찰 조사를 더 받은 후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의 김씨의 마음 고생은 말도 못 했습니다. 2박 3일의 유치장 생활 역시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것 같았습니다. 
덧붙여 무혐의 처분의 이유에 기재된 이양의 무고혐의에 대한 판단은 '혐의없음'이었습니다. 무고한 사람도 없고 강간한 사람도 없는 셈인데 김씨는 고초를 당했습니다. 김씨는 "억울해서 못 살겠다"며 원통해했습니다.
아, 그리고 김씨가 무혐의를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처음부터 비협조적이었던 모텔 주인은 그래도 경찰에게는 "김씨와 이씨가 평범하게 와서 투숙했으며, 김씨는 얼마 안 있다가 바로 나갔고, 김씨와 이씨가 투숙한 방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했으면 카운터에 다 들릴 수 밖에 없는데 큰소리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역시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사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성범죄로 형사사건이 진행될 경우 양측이 입는 피해의 불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사건에서 김씨는 실제로 2박 3일을 유치장에 갇혀 있었고, 호프집 점원과 사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사전 구속에 실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체포된 것만으로도 김씨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고 구속을 당했다면 가정은 풍비박산났을 것입니다. 게다가 실형을 받았다면 그에 이어지는 신상정보 등록, 고지, 공개로 인해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살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고를 당하는 것
반면 이씨의 경우 무고에 관하여 무혐의로 결정된 이상 아무런 손해도 없습니다. 물론 멀쩡한 직장동료를 강간으로 고소하였다는게 직장에 소문이 났을테니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이 사건도 그렇지만, 여성이 술에 너무 많이 취해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인지 하지 못 하는 상태에서 고소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성범죄의 경우 특히 추행이 아니라 강간인 경우 피고인이 유죄가 아니라면 고소인이 무고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고한 사람도 없고 강간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간 혐의자가 무죄 판결이나 혐의 없음 처분을 받더라도 고소한 여성이 실제로 무고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 하였고, 무고하였다는 것을 수사기관에서 인정한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벌금형 정도로 가볍게 끝나고 말았던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대부분의 성범죄의 경우 특히 추행이 아니라 강간인 경우
피고인이 유죄가 아니라면 고소인이 무고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무고한 사람도 없고 강간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사기관의 행태에 대한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사건에서도 김씨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감히 너 따위가 이씨와 어울리기나 하느냐'는 식의 모욕적인 추궁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성범죄 수사과정에서 고소인인 여성이 젊고 이쁜 반면 그에 반해 피의자인 남성의 외모나 학력이 별 볼일 없는 경우 이런 식의 모욕적인 추궁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에서만 드러난 것일뿐 일상적일 수도 있지만 수사기관이 피의자측의 정당한 증거 수집행위를 방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수사관행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며, 제도적으로 이를 제한할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고사건을 아무래도 많이 다루다보니 시선이 다소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고가 심각한 범죄임과는 별개로 성범죄 역시 미워해야 마땅한 범죄행위입니다. 다음포스팅에서는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