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 강간무고 # 동영상복구

[정변의기묘한모험] 성범죄 변호사를 오래하면

안녕하세요 정변입니다.
성범죄 전담 변호사를 오래하다보니 가끔 같은 사건으로 피고인과 고소인이 모두 저희 법무법인 바움에 찾아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보통은 사전 전화 상담으로 걸러지게 되는데 다른 직원이 전화를 받고 거의 동시에 방문 상담 날짜를 잡다보면 겹치는 경우가 가끔 생기게 됩니다. 물론 저희가 둘 다 사건을 맡을 수는 없습니다. 수임계약을 먼저한 쪽의 의뢰를 맡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닥쳐! 사건을 맡으란 말이야!!
오늘은 그런 사건 중 변호사로서 실체적 진실의무와 직업 윤리의 충돌을 경험하게 된 조금 억울한 이야기를 소개해볼까 합니다.
벌써 꽤 오래전의 이야기입니다. 갑이라는 의뢰인이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담당한 직원은 A직원이었습니다. 내용은 인터넷 상으로 만난 여성과 합의하에 성관계를 가졌는데 이 여성이 강간으로 고소를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사건이 녹록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성의 얼굴이 꽤 상해 있었고, 그것은 자신이 때렸기 때문인 것은 사실이라고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성의 얼굴의 상처에 대해 갑은 성관계 중 갑자기 여성이 목을 조르길래 깜짝 놀라 무차별적으로 여성의 얼굴을 때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담당직원 A가 난색을 표하자 갑은 "모텔에 가기 전에 처음 만난 호프집에서 거의 삽입성교에 가까운 스킨십이 있었고, 스킨십이 너무 과했기 때문에 호프집 직원들이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강간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쯤되면 억울한 고소를 당하게 된 사건인지, 아니면 범인이 거짓말을 하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성범죄 고소사건을 담당하다보면 증거수집이나 의뢰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탐정 같은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직원 A를 그 호프집으로 보내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그 호프집 직원들이 "이 곳이 (룸식 호프집이라서) 원래 커플들 스킨십이 심한 곳이기는 한데 그 커플은 너무 스킨십이 심해서 우리들끼리 쟤네는 정말 너무한다라고 얘기하기도 했기 때문에 똑똑히 기억한다"라고 했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는 갑과 수임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한 여성이 사무실에 찾아왔습니다. 상담을 맡은 직원은 이번엔 B였습니다. 이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한 남자를 만났고, 그 남자에게 모텔로 끌려가 강간을 당해 강간으로 고소했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사실 강간으로 고소하긴 했지만 제가 캥기는 부분이 있어서요.. 그 남자를 만나서 룸식 호프집에 갔는데 스킨십이 너무 강했습니다. 거의 섹스까지 갔어요. 제가 미쳤지요"라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이후의 과정에 대해서는 내용을 제대로 말하지 못하였습니다.

직원B는 혹시 무고가 아닐까 싶어 뭔가 사건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제 방으로 찾아왔고 제가 설명을 한참 듣고 있을 때 외근을 나갔던 직원 A가 사무실에 복귀했습니다. 제 방에 옹기종이 3명이 모여서 내용을 공유하고 직원 A는 '혹시 갑 사건이 아니냐? 너무 비슷하다'라고 했고 저는 직원A와 B로 하여금 함께 을을 상담해 보라고 지시했습니다. 만약 여성이 갑사건의 상대방이 맞는 것 같다면 거기서 상담을 끝내고 돌려 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그 여성은 갑 사건의 상대방이었습니다. 만난 일시, 인터넷 사이트, 같이 간 술집, 합께 간 모텔, 그리고 결정적으로 상대방의 이름까지 같았습니다. 이미 수임계약을 마친 상대방의 변호사라는 것을 알면 가끔 그 수임계약을 해지하고 자신과 계약을 맺으라고 떼를 쓰는 경우도 왕왕 있는터라 여성이 눈치채지 못하게 거절하느라 직원A, 직원B가 힘들었노라고 호소했습니다.
이 사건이 기억이 많이 남는 건 갑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이 너무도 명백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갑을 도와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사과정이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1) 수임 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도해도 너무 한 스킨십이 있어서 똑똑히 기억한다던 호프집 직원들이 어찌된 일인지 수사과정에서 모두 입을 닫았습니다.
2) 수사기관은 여성의 말만 듣고 내용이 이상한 부분을 전혀 추궁을 하지 않고 넘어갔습니다. 예를 들어 왜 모텔에 같이 들어갔냐는 질문에 여성은 다리가 아파서 걷기 힘들어서 그냥이라고 대답했는데 아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습니다.

3) 반대로 수사기관은 한겨울이어서 별로 땀을 흘리지 않았고, 호프집에서 나눈 스킨쉽의 여운이 가시기 전에 관계를 맺게 되었다는 남성을 향하여 왜 샤워를 하지 않고 성관계를 했느냐, 샤워를 하지 않고 성관계를 나눈 것은 강간의 징표라며 윽박질렀습니다.



아 모르겠고.. 샤워 안했으면 강간이야 

이렇게 황당하게 사건이 흘러가자 저는 최후의 보루로 남겨두었던 직원 A, B카드를 만지작 거리게 되었습니다. 갑과 을을 모두 상담했던 직원 A와 B를 진술시키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습니다. 하지만 그냥 생각해도 찝찝한 일이었습니다. 상담자의 비밀이 지켜지지 않고 이런식으로 우연에 의해 상대방 변호사의 카드가 되어서는 안되겠지요.  억울하게 무고를 당한 갑이 안타까웠습니다. 변호사로서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과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 사이에서 갈팡질팡 며칠을 고민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변호사협회에 질의도 보내보았습니다. 변협의 답변은 변호사법 위반이니 진술해서는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결국 직원들은 진술할 수 없었고, 갑은 무죄를 다툴 생각을 버리고 저에게 사임요구를 한 뒤 전관 변호사를 찾아 양형을 줄이는 일에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전관 변호사는 갑에게 자백해야 한다고 했고 갑이 자백한 결과, 1심에서 3년인가 5년의 실형을 받았다는 얘기를 부모님께 전해들었습니다.(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관변호사냐)

두 선택이 모두 에이스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이드로..다퉈볼만한 사건의 증거는 몇가지 더 있었습니다.그 중에서 제일 컸던 것은 갑의 핸드폰으로 찍었던 동영상이었습니다. 갑과 상대 여성 모두의 진술이 일치하는 부분으로, 성관계 당시 영상은 없고 음성만 들어 있던 동영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함께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서 발견하여 여성이 갑에게서 핸드폰을 빼앗아 바로 삭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성이 동영상을 삭제하고 택시를 타고 도착한 곳이 재미있습니다. 여성은 동영상을 지우고 난 후 택시를 일부러 파출소 앞에 세웠고, 바로 그 파출소에서 강간신고를 하게 됩니다. 즉 택시를 타고 갈 당시 여성은 신고를 할 생각이었다는 것입니다. 강간이었다면 당시 상황이 녹음된 그 동영상은 강간을 증명하는 가장 유리한 증거였을텐데 그녀는 왜 그 동영상을 (방금 자신을 강간한 남자에게서) 빼앗아 지웠을까요. 

아쉽게도 갑은 다음날 바로 해외여행을 가서 사진을 수백장 찍고 돌아왔습니다. 귀국하여 고소당한 사실을 알고 그날의 강간이 아닌, 그들의 행위가 녹음된 그 동영상이 떠올라 반대 증거로 쓰기 위해 이를 복구업체에 맡겼습니다. 이미 무죄를 다투지 않고 전관 변호사를 찾아갔고, 실형이라는 결론에서 유추하셨겠지만 복구에는 실패했습니다. 
저는 우리 직원들이 증언만 할 수 있었다면 사건의 양상은 굉장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저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직업 윤리를 우선한 선택이 옳았던 것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갑은 명문대를 나온 전도 유망한 젊은이였습니다. 갑은 도대체 그의 잃어 버린 인생을 어떻게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무고는 한 사람의 미래를
송두리째 빼앗는 범죄입니다

다음 번에 이런 일이 또 다시 생긴다면 그 때는 징계를 무릅쓰고서라도 실체적 진실을 밝혀 볼까 합니다. 그리고나서는 직업윤리를 우선했어야 한다고 또 후회를 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체적 진실을 추구해야 하는 의무와 변호사의 신뢰의 기반이 되는 직업 윤리, 갈등하지 않고 마음편히 둘 다 충실하게 추구할 수 있도록 수사기관이 충분하고 성의있는 수사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