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2월 7일 목요일

# 변호사선임기준 # 성범죄무혐의

[정변의기묘한모험] 억울한 피해자 이야기

안녕하세요법무법인바움의 흔한 야근 노동자 정변입니다.
정변의 기묘한 모험을 즐겨 보시는 분들은 세상에는 온통 성범죄는 없고 성범죄 무고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엔 억울한 피해자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주로 피의자나 피고인측 얘기만 해와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사실 저희는 피해자측 조력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는 본질상 모두 억울한 것이 기본이라서 어떻게 하면 억울하지 않을지 사례로 제시할 방법론이 마땅치 않아, 서술에 따라선 잘못하면 범죄 자체가 피해자탓이 되어 버릴 수도 있어 글을 쓰는 것이 꽤 조심스럽습니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피해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이중 억울 뿐만 아니라 2차 가해까지 당하면서 신체적 가해에 플러스 정신 에너지마저 완전히 소진하게 되는, 뭐든지 더블 데미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글을 보시는 선량한 분들이 아무쪼록 2차 가해에는 가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성범죄 피해는 해당 성범죄 뿐만 아니라 소위 이중 가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무고죄에 대한 이야기가 만연한 요즘 사회의 분위기상 피해를 당한데다가 꽃뱀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게 됩니다. 이번 모험에 등장하는 피해자 역시 숲속 친구들의 이중 가해로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전관예우로 의심되는 사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 김양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피해자 김양은 미혼의 20대 여성으로 국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사원이었습니다. 사건 당일 팀회식에 참가했고 1차는 평범한 삼겹살 회식으로 가볍게 소주를 약간(4잔 정도 마셨다고 합니다) 마신 후, 팀장이  "늙은이들은 자리를 빠져 줄테니 젊은 사람들은 좀 더 놀던지 하라"고 자리를 비켜주어 동료들과 2차를 가게 되었습니다. 2차로 자리를 옮길 때 가해자로 지목된 직장 동료 이군이 "자신이 잘 아는 와인바가 있으니 같이 갈 사람은 가자"고 하여 2~30대의 팀원 몇 명이 함께 와인바에 갔고, 김양은 와인바에서 와인을 두어잔 마신 후 기억이 끊어졌습니다. 와인바에 간 시각은 오후 10시 경이었습니다.
와인 몇잔을 끝으로 김양은 다음날 오전 5시경 낯선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일어났습니다.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었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옷은 거실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약간 젖어 있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을 직감한 김양은 바로 경비실에 내려가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와인바에서의 기억을 끝으로
낯선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깬 피해자
이윽고 경찰이 출동하였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가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검사를 받은 결과, 약물 반응은 음성이었고 질내에서 정액이 나오지도 않았으나, 처녀막에 신생출혈이 발견(진단명은 처녀막 열상)되었고, 입술, 가슴, 목에서 남성의 타액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앞서 말한 이군의 것으로 후에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사건 직후에는 정말 아무 기억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기억이 끊어진 시간에 음부가 아프다고 소리친 기억과, 음모와 아랫배를 본 기억이 흐릿하게 살아났다고 합니다. 성폭행 피해자, 특히 준강간과 같이 술이나 약물 등으로 일시적으로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를 당하는 경우 사건 직후에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이군의 주장은 김양과 택시를 타고 김양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 자신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김양의 집에 거의 다 와서 깨었는데, 김양이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고, 김양의 집을 알 수가 없어서 비어 있는 부모님 소유의 강남의 모 아파트로 데려간 것이며, 아파트에서 재우려고 했는데 김양이 변을 봐서 옷을 벗기고 씻긴 후 더러워진 옷을 세제없이 물로 대충 세탁해 바닥에 널어둔 것일 뿐 김양을 성폭행 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건 발생 장소인 아파트 얘기를 따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군의 부친은 고위직 공무원 출신인데,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고 어쩌다 서울 올 일이 있으면 하룻밤 자는 등의 용도로 놔두었고 실제로 사용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를 일년에 며칠 묵자고 그냥 빈집으로 놔둔다... 참으로 부러운 재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세라도 내놓으면 받는 월세로 가끔 올라와서는 초특급 호텔에서 지낼 수 있을텐데...

여튼 김양이 저를 찾아온 것은 이군에 대한 1심재판이 끝난 후였습니다. 성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서 준강제추행으로 기소가 되었는데 이군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건을 접해 본 제가 보기에도 굉장히 의아스러운 결과였습니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면 피해자가 거의 기억을 못 하므로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무죄가 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무고 피해자들을 양산할때는 언제고 이 사건에서는 충실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했을까요. 어디 우리나라 법원이 그러던가요? 처녀막 열상이 있고, 신체 주요부위에서 타액이 나오는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고, 불확실 하지만 피해자가 음부에 통증을 느꼈고, 음모를 본 기억이 있다면 분명 무죄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재판결과에 대해 제가 의문을 표시하자 김양은 이군의 변호인이 굉장히 센 변호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군의 변호인은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형로펌이었습니다. 게다가 담당변호사는 이군이 선임하기 약 5개월전까지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분이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건을 수임하여 기록과 1심 판결문을 검토했습니다. 정말 여러가지로 의문이 많은 판결이었습니다.
먼저 김양이 그렇게까지 정신을 잃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소주 4잔, 와인 두잔 정도로 그렇게 정신을 잃을 수 있을지 김양 본인도 의문스러워 하면서 약물을 의심했습니다. 김양이 당시 마신 술의 양은 다른 팀원들의 진술로도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팀원 중 한명은 와인바에서 택시를 탈 때까지 김양이 취했다고 생각하지 못 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멀쩡했다고 합니다. 블랙아웃이 와 있었지만 멀쩡하게 행동하는 약물이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심증만 있지 딱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약물검사가 이미 음성으로 나와있었기 때문입니다.
택시의 운행시간도 의문이 많았습니다. 강남의 와인바에서 김양의 주거지 인근을 돌다가 다시 강남의 아파트로 돌아왔다는 것이 이군의 주장인데 택시영수증에 찍힌 탑승시간이 너무나 짧았습니다. 예상 경로로 계산을 해보면 택시의 평균시속이 80km정도로 나왔습니다. 트립 컴퓨터에 평균시속이 표시되는 차를 탄다면 도심에서 평균시속이 80km가 나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시내구간에서의 잠깐의 신호대기가 평균시속을 많이 깍아 먹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술 취한 사람을 데려다 주면 집 근처에서 정확한 집 위치를 알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고 평균속도 80km, 즉 멈추고 어슬렁거리고 신호에 걸리는 것 까지 계산하면 시속 120km 이상으로 도심을 질주해야 겨우 김양의 집과 사건 현장까지 왕복이 가능합니다. 시가 실제로 김양의 집 근처까지 갔었던 것인지 굉장히 의심스럽고, 김양의 집 인근을 서행하여 돌아다니다가 강남으로 다시 넘어온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처녀막 열상은 넘어져서 생긴것?
처녀막 열상에 대해 판결문에서는 재판과정에서 여러 경로로 의견을 청취한 의사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이 사건 당시에 생기 것이 아니거나,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김양이 넘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 혹은 이군이 씻기는 과정에서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양을 처음 진료한 의사는 매우 인접한 시점에 있었던 출혈이고, 이러한 출혈은 2~3시간이면 멎으며 3~4일간 출혈이 지속될 상처는 아니라고 하였고, 수사기관에서 의견을 청취한 의사들은 모두 음부를 단순히 씻기기만 하다가 처녀막이 손상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넘어져서 처녀막이 손상될 가능성은 조금은 있으나, 상처의 모양, 크기, 질내에서 남성 염색체나 정액이 검출된 바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사건 당시 손가락에 의한 상처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다만, 법원에서 직접 의견을 청취한 의사는 김양의 처녀막 열상이 사건 당일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상처의 형태나 위치 등으로는 타인의 손가락에 의한 추행으로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타액 증거에 대한 판결은 더욱 상식밖이었습니다.
입술, 목, 가슴에서 검출된 이군의 타액에 대해서 법원은 이군의 주장에 따라 김양을 씻기고 옮기면서 힘쓰느라 침을 흘렸을 수도 있고, 가까이에 대고 말하면서 침이 튀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점에 대해 저는 항소심에서 검증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과연 씻기고 옮기는 과정에서 타액이 묻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보기 좋게 기각당하였고, 검사의 항소 역시 기각당했습니다. 어찌됐건 너무 늦게 김양을 만나게 되었고, 1심 판결을 뒤집는 것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하면서 스스로 전관예우 같은 핑계는 대지 않으려 하는데, 이 사건은 너무나도 다른 태도에 전관예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직접 그것을 대면하자 변호사로서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몇달 뒤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참담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몇달 뒤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이 언론 기사로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에는 이군이 술에 취한 김양을 부모님 아파트로 데리고 가서 재워주고 자신은 집으로 갔는데 김양이 성폭행으로 고소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악의가 있었는지, 혹은 직장 생활에 문제가 생긴 이군 측의 사주가 있었는지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아파트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사에는 숲속 친구들이 김양을 꽃뱀이라고 모역하는 댓글로 가득했습니다. 부모님 집에 두고 나왔는데도 고소를 당하면 어쩌라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김양을 멍청하다고 모욕하고, 꽃뱀으로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기사에 만약 부모님의 아파트가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고 새벽에 알몸으로 피해자가 혼자 깼다는 점을 적시하였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잠깐이나마 김양의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로서 정말 참담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성범죄 무고의 문제는 분명히 심각합니다. 변호사로 무고를 당한 피의자의 변호를 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 적도 있고 무고의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공감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때문인지 우리는 너무 쉽게 성범죄 피해자를 무고 범죄자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고양이인걸까
이 글을 읽는 분들께는 성범죄 관련 사건기사를 접했을 때 아무쪼록 관련 언론 기사를 오롯한 진실이라고는 믿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범죄 고소사건에 무고가 많고, 억울한 남성이 계속 나온다고 하더라도 진짜 피해자는 존재하며, 어디선가 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무고가 많은들, 모든 성범죄 피해자가 꽃뱀이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하여 꽃뱀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남성 성범죄자가 많아도 모든 남성이 성범죄자라는 전제하에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듯 말입니다.(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증명 상황에 마주하는 경우가 있더라도)어떤 사건을 보면서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생각하면 그것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부르게됩니다. 모든 케이스는 각 사건 고유의 논점과 알려지지 않는 뒷이야기와 배경, 의도가 있습니다. 이 점을 간과하면 우리는 아주 쉽게, 마음 편히,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숲속 친구들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그 무책임하고 생각 없이 한 가벼운 발언으로 움츠러들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