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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7일 목요일

[정변의기묘한모험] 억울한 피해자 이야기

12월 07, 2017
안녕하세요법무법인바움의 흔한 야근 노동자 정변입니다.
정변의 기묘한 모험을 즐겨 보시는 분들은 세상에는 온통 성범죄는 없고 성범죄 무고만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실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이번엔 억울한 피해자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 주로 피의자나 피고인측 얘기만 해와서 오해하시는 분이 계실지도 모르는데 사실 저희는 피해자측 조력도 꽤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 피해자는 본질상 모두 억울한 것이 기본이라서 어떻게 하면 억울하지 않을지 사례로 제시할 방법론이 마땅치 않아, 서술에 따라선 잘못하면 범죄 자체가 피해자탓이 되어 버릴 수도 있어 글을 쓰는 것이 꽤 조심스럽습니다.
여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울한 피해자 이야기를 하는 것은 성범죄 피해자들은 이중 억울 뿐만 아니라 2차 가해까지 당하면서 신체적 가해에 플러스 정신 에너지마저 완전히 소진하게 되는, 뭐든지 더블 데미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글을 보시는 선량한 분들이 아무쪼록 2차 가해에는 가담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성범죄 피해는 해당 성범죄 뿐만 아니라 소위 이중 가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무고죄에 대한 이야기가 만연한 요즘 사회의 분위기상 피해를 당한데다가 꽃뱀이라는 누명까지 뒤집어쓰게 됩니다. 이번 모험에 등장하는 피해자 역시 숲속 친구들의 이중 가해로 고통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조금은 민감할 수 있는 전관예우로 의심되는 사안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자, 김양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피해자 김양은 미혼의 20대 여성으로 국내 손가락 안에 드는 대기업 사원이었습니다. 사건 당일 팀회식에 참가했고 1차는 평범한 삼겹살 회식으로 가볍게 소주를 약간(4잔 정도 마셨다고 합니다) 마신 후, 팀장이  "늙은이들은 자리를 빠져 줄테니 젊은 사람들은 좀 더 놀던지 하라"고 자리를 비켜주어 동료들과 2차를 가게 되었습니다. 2차로 자리를 옮길 때 가해자로 지목된 직장 동료 이군이 "자신이 잘 아는 와인바가 있으니 같이 갈 사람은 가자"고 하여 2~30대의 팀원 몇 명이 함께 와인바에 갔고, 김양은 와인바에서 와인을 두어잔 마신 후 기억이 끊어졌습니다. 와인바에 간 시각은 오후 10시 경이었습니다.
와인 몇잔을 끝으로 김양은 다음날 오전 5시경 낯선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일어났습니다. 아파트에는 아무도 없었고, 사람이 살지 않는 폐가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옷은 거실 여기저기에 널려 있었고, 약간 젖어 있었습니다. 성폭력 피해를 당했음을 직감한 김양은 바로 경비실에 내려가 울면서 살려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와인바에서의 기억을 끝으로
낯선 아파트에서 알몸으로 깬 피해자
이윽고 경찰이 출동하였습니다. 바로 병원으로 가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검사를 받은 결과, 약물 반응은 음성이었고 질내에서 정액이 나오지도 않았으나, 처녀막에 신생출혈이 발견(진단명은 처녀막 열상)되었고, 입술, 가슴, 목에서 남성의 타액이 검출되었는데, 이는 앞서 말한 이군의 것으로 후에 판명되었습니다.
또한 사건 직후에는 정말 아무 기억이 없었는데, 시간이 지나자 기억이 끊어진 시간에 음부가 아프다고 소리친 기억과, 음모와 아랫배를 본 기억이 흐릿하게 살아났다고 합니다. 성폭행 피해자, 특히 준강간과 같이 술이나 약물 등으로 일시적으로 저항이 없는 상태에서 피해를 당하는 경우 사건 직후에 사건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경우가 꽤 많이 있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이군의 주장은 김양과 택시를 타고 김양의 집으로 향하던 도중 자신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김양의 집에 거의 다 와서 깨었는데, 김양이 인사불성이 되어 있었고, 김양의 집을 알 수가 없어서 비어 있는 부모님 소유의 강남의 모 아파트로 데려간 것이며, 아파트에서 재우려고 했는데 김양이 변을 봐서 옷을 벗기고 씻긴 후 더러워진 옷을 세제없이 물로 대충 세탁해 바닥에 널어둔 것일 뿐 김양을 성폭행 한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사건 발생 장소인 아파트 얘기를 따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군의 부친은 고위직 공무원 출신인데,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가면서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지 않고 어쩌다 서울 올 일이 있으면 하룻밤 자는 등의 용도로 놔두었고 실제로 사용은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강남 한복판의 아파트를 일년에 며칠 묵자고 그냥 빈집으로 놔둔다... 참으로 부러운 재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월세라도 내놓으면 받는 월세로 가끔 올라와서는 초특급 호텔에서 지낼 수 있을텐데...

여튼 김양이 저를 찾아온 것은 이군에 대한 1심재판이 끝난 후였습니다. 성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서 준강제추행으로 기소가 되었는데 이군은 무죄판결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건을 접해 본 제가 보기에도 굉장히 의아스러운 결과였습니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극적으로 적용한다면 피해자가 거의 기억을 못 하므로 직접적인 증거가 없어 무죄가 나올 수도 있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무고 피해자들을 양산할때는 언제고 이 사건에서는 충실하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했을까요. 어디 우리나라 법원이 그러던가요? 처녀막 열상이 있고, 신체 주요부위에서 타액이 나오는 등 객관적인 증거가 있고, 불확실 하지만 피해자가 음부에 통증을 느꼈고, 음모를 본 기억이 있다면 분명 무죄는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재판결과에 대해 제가 의문을 표시하자 김양은 이군의 변호인이 굉장히 센 변호사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군의 변호인은 언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형로펌이었습니다. 게다가 담당변호사는 이군이 선임하기 약 5개월전까지 부장판사로 근무하던 분이었습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사건을 수임하여 기록과 1심 판결문을 검토했습니다. 정말 여러가지로 의문이 많은 판결이었습니다.
먼저 김양이 그렇게까지 정신을 잃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소주 4잔, 와인 두잔 정도로 그렇게 정신을 잃을 수 있을지 김양 본인도 의문스러워 하면서 약물을 의심했습니다. 김양이 당시 마신 술의 양은 다른 팀원들의 진술로도 확인되었습니다. 또한 팀원 중 한명은 와인바에서 택시를 탈 때까지 김양이 취했다고 생각하지 못 했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멀쩡했다고 합니다. 블랙아웃이 와 있었지만 멀쩡하게 행동하는 약물이 뭐가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심증만 있지 딱히 방법이 없었습니다. 약물검사가 이미 음성으로 나와있었기 때문입니다.
택시의 운행시간도 의문이 많았습니다. 강남의 와인바에서 김양의 주거지 인근을 돌다가 다시 강남의 아파트로 돌아왔다는 것이 이군의 주장인데 택시영수증에 찍힌 탑승시간이 너무나 짧았습니다. 예상 경로로 계산을 해보면 택시의 평균시속이 80km정도로 나왔습니다. 트립 컴퓨터에 평균시속이 표시되는 차를 탄다면 도심에서 평균시속이 80km가 나오는 것이 대단히 어려운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시내구간에서의 잠깐의 신호대기가 평균시속을 많이 깍아 먹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술 취한 사람을 데려다 주면 집 근처에서 정확한 집 위치를 알기 위해 실랑이를 벌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고 평균속도 80km, 즉 멈추고 어슬렁거리고 신호에 걸리는 것 까지 계산하면 시속 120km 이상으로 도심을 질주해야 겨우 김양의 집과 사건 현장까지 왕복이 가능합니다. 시가 실제로 김양의 집 근처까지 갔었던 것인지 굉장히 의심스럽고, 김양의 집 인근을 서행하여 돌아다니다가 강남으로 다시 넘어온 것은 절대로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처녀막 열상은 넘어져서 생긴것?
처녀막 열상에 대해 판결문에서는 재판과정에서 여러 경로로 의견을 청취한 의사들의 견해를 인용하여 이 사건 당시에 생기 것이 아니거나,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 김양이 넘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 혹은 이군이 씻기는 과정에서 생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김양을 처음 진료한 의사는 매우 인접한 시점에 있었던 출혈이고, 이러한 출혈은 2~3시간이면 멎으며 3~4일간 출혈이 지속될 상처는 아니라고 하였고, 수사기관에서 의견을 청취한 의사들은 모두 음부를 단순히 씻기기만 하다가 처녀막이 손상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넘어져서 처녀막이 손상될 가능성은 조금은 있으나, 상처의 모양, 크기, 질내에서 남성 염색체나 정액이 검출된 바 없는 점 등으로 보아 사건 당시 손가락에 의한 상처로 보인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다만, 법원에서 직접 의견을 청취한 의사는 김양의 처녀막 열상이 사건 당일 발생한 것인지 알 수 없고, 상처의 형태나 위치 등으로는 타인의 손가락에 의한 추행으로 발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제시하였습니다.
타액 증거에 대한 판결은 더욱 상식밖이었습니다.
입술, 목, 가슴에서 검출된 이군의 타액에 대해서 법원은 이군의 주장에 따라 김양을 씻기고 옮기면서 힘쓰느라 침을 흘렸을 수도 있고, 가까이에 대고 말하면서 침이 튀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 점에 대해 저는 항소심에서 검증을 신청해 보았습니다. 과연 씻기고 옮기는 과정에서 타액이 묻을 수 있는지 실험을 해 보자는 것이었는데 보기 좋게 기각당하였고, 검사의 항소 역시 기각당했습니다. 어찌됐건 너무 늦게 김양을 만나게 되었고, 1심 판결을 뒤집는 것은 시도도 해보지 못한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하면서 스스로 전관예우 같은 핑계는 대지 않으려 하는데, 이 사건은 너무나도 다른 태도에 전관예우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직접 그것을 대면하자 변호사로서 심각한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몇달 뒤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저는 참담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몇달 뒤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 사건이 언론 기사로 나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사에는 이군이 술에 취한 김양을 부모님 아파트로 데리고 가서 재워주고 자신은 집으로 갔는데 김양이 성폭행으로 고소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어떤 악의가 있었는지, 혹은 직장 생활에 문제가 생긴 이군 측의 사주가 있었는지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여 보도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의 아파트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이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아파트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해당 기사에는 숲속 친구들이 김양을 꽃뱀이라고 모역하는 댓글로 가득했습니다. 부모님 집에 두고 나왔는데도 고소를 당하면 어쩌라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김양을 멍청하다고 모욕하고, 꽃뱀으로 몰고 가고 있었습니다. 기사에 만약 부모님의 아파트가 실제로 사람이 살지 않는 빈집이었고 새벽에 알몸으로 피해자가 혼자 깼다는 점을 적시하였다면 사람들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을까요?잠깐이나마 김양의 사건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로서 정말 참담한 기분이 되었습니다.
성범죄 무고의 문제는 분명히 심각합니다. 변호사로 무고를 당한 피의자의 변호를 하면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 적도 있고 무고의 처벌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에도 공감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이유때문인지 우리는 너무 쉽게 성범죄 피해자를 무고 범죄자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고양이인걸까
이 글을 읽는 분들께는 성범죄 관련 사건기사를 접했을 때 아무쪼록 관련 언론 기사를 오롯한 진실이라고는 믿지 말아달라는 당부를 드리고 싶습니다. 성범죄 고소사건에 무고가 많고, 억울한 남성이 계속 나온다고 하더라도 진짜 피해자는 존재하며, 어디선가 아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무고가 많은들, 모든 성범죄 피해자가 꽃뱀이라는 전제하에서 출발하여 꽃뱀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남성 성범죄자가 많아도 모든 남성이 성범죄자라는 전제하에 아니라는 증명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듯 말입니다.(물론 현실에서는 이런 증명 상황에 마주하는 경우가 있더라도)어떤 사건을 보면서 지나치게 일반화하여 생각하면 그것을 우리는 편견이라고 부르게됩니다. 모든 케이스는 각 사건 고유의 논점과 알려지지 않는 뒷이야기와 배경, 의도가 있습니다. 이 점을 간과하면 우리는 아주 쉽게, 마음 편히, 익명성의 뒤에 숨어서 숲속 친구들이 될 수 있고, 누군가는 그 무책임하고 생각 없이 한 가벼운 발언으로 움츠러들고 아파할 수 있습니다.
 

2017년 11월 30일 목요일

[정변의기묘한모험] 무고의 이유(하)

11월 30, 2017
가끔 광고도 넣어보자
안녕하세요법조계에서 기묘한 모험을 하고 있는 변호사 정수인입니다.
지난 포스팅에 이어 오늘은 무고를 당한 김씨의 이야기의 나머지를 할까 합니다. 어쩌면 이번 이야기가 이 글을 혹시 보게 될 무고를 당한 억울한 분들에게 가장 와 닿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사건의 김씨는 변호사가 옆에 있었는데도 지옥에 갔다 왔습니다. 만약 변호사도 없었다면 김씨는 어떻게 됐을까요. 
김씨와 상담 후 저는 김씨의 진술의 진실성을 확인하기 위하여 직원에게 현장 조사를 지시했습니다. 
김씨와 이씨가 갔던 3차와 4차 맥주집의 직원과 사장이 김씨를 알아보았고 3차 맥주집의 알바생은 "당일 비가 많이 와서 손님이 적었기 때문에 당시를 똑똑히 기억한다. 여자가 많이 울었고, 김씨가 많이 위로해 주었다. 그러다가 김씨가 화를 내며 나갔고, 이씨가 바로 뒤쫓아 나갔다. 그러고 나서 설거지를 하는데 밖을 보니 이씨가 편의점에서 나와서는 김씨에게 다가가 매달리면서 뭔가 부탁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고, 김씨는 처음에는 거부하다가 마지못해 하면서 맞은 편 호프집으로 올라갔다"고 했습니다.  cctv는 3차 맥주집의 사장님이 안계셔서 알바생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4차 맥주집의 사장도 "이씨와 김씨는 들어와서 맥주 한잔씩을 시키고 얼마 안있어서 나갔는데 별다른 소란은 없었고, 사이좋게 함께 나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모텔사장은 "남의 일에 참견하고 싶지 않다"며 입을 닫았습니다. 그런 일도 있는 법입니다.
여튼 현장에 보낸 직원으로부터 전화로 이러한 보고를 받은 저는 바로 사건을 수임하기로 하면서 현장에 있는 직원에게 3, 4차 맥주집 직원과 사장의 진술서를 받을 수 있으면 받아 놓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 동안 현장 조사와 수사과정에서 증언이 바뀌거나 입을 닫는 것을 많이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며칠 뒤 김씨는 갑자기 회사에서 긴급체포되었습니다.
김씨가 체포된 날 재판이 많았던 저는 오후 6시쯤에야 피의자가 체포되어 있는 경찰서에 도착하였고 그 때부터 시작된 피의자신문에 참석했습니다. 당황스러울정도로 수사기관은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으며 김씨를 모욕했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김씨가 먼저 경찰에 고소된 것이 있는지 확인한 것과 그것을 확인하고 미리 변호인을 선임한 점을 문제삼았습니다. "네가 잘못한게 있으니까 고소된 게 있는지 경찰서에 확인해 보려고 한 것이고, 변호인도 미리 선임한 것 아니냐"는 거였습니다. 맙소사...
여기에 한 가지 더, 이씨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명문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입사한지 몇 년 안 된 젊은 미모(불필요하지만 이쁘긴 정말 이뻤습니다)의 재원이었고, 김씨는 보통 사람들은 이름도 잘 모르는 대학을 졸업하여 현장직으로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애 딸린 아저씨였습니다. 수사기관에서는 이 점을 건드리며 김씨에게 모멸감을 주었습니다. "저렇게 어리고 똑똑하고, 연봉도 높은 미모의 아가씨가 너에게 눈길이나 주었겠느냐. 합의하에 모텔로 갔다는 건 말이 안된다.", "니 주제에 언감생심 저런 아가씨를 건드리려고 했느냐" 등입니다.제가 이를 지켜보면서 형사들에게 항의해 보기도 했지만, 그때만 반짝 주춤했지 별로 소용이 없었습니다. 물론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편견으로 봤을때 형사의 말이 아예 틀리진 않을 수도 있겠지만 수사를 하는 형사는 개인이 아닌 국가기관입니다. 아직 혐의가 확정된 것도 아닌 피의자에게 이런식의 모멸감을 주는 것이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피의자신문을 1차로 마치고, 바로 이씨와의 대질이 이어졌습니다. 이씨는 지난 포스팅에 쓴대로 김씨의 진술  전체의 내용을 부인하였습니다.

이씨의 이러한 주장을 듣고 저는 미리 받아 놓은 3, 4차 호프집 직원과 사장의 진술서를 그 자리에서 제출하였습니다. 3차 호프집에 cctv가 있음을 언급하면서 확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진술서 내용이나 김씨와 저의 주장에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눈치였습니다.
저는 괴로웠습니다. 경험상 이런 반응이면 당연히 다음날 영장을 청구하고 그 다음날 오전에는 영장실질심사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힘든 2박 3일이 될 것이 눈에 선했습니다. 


대질 신문까지 마치자 자정이 다되었습니다. 저는 경찰서 인근에서 대기하고 있던 직원과 함께 3차 호프집으로 갔습니다. 사장님은 알바에게 들었다면서 우리를 반겼습니다. 그러면서 사장님은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조금 전에 형사들이 다녀갔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은 사장님에게 변호사한테 진술서 같은 거 써주지 말라고 하면서  그거 다 법에 걸리는 거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기가 막힐 노릇입니다.

경찰은 사장님에게 변호사한테 진술서 같은 거 써주지 말라고 하면서
그거 다 법에 걸리는 거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경찰은 사장님에게 "CCTV를 보여달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은 "거짓말도 아니고 있었던 일 써주는게 뭐가 걸린다는 거냐"고 하면서 "지금 협박하는 거냐"고 찾아온 형사들과 한바탕을 했고 CCTV를 보여달라는 요구에는 "보고싶으면 영장을 갖고 오던지 하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지난 번 이야기에서도 나오지만, 보통 이런 경우 증인들은 수사기관의 협박을 받고 변호사나 그 직원들을 멀리하게 마련입니다. 형사들이 이렇게 까지 했는데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사장님이 너무 고마웠고, 김씨가 그나마 복이 있구나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사장님께 부탁하여 CCTV를 보게 되었습니다. 아쉽게도 김씨와 이씨가 술을 마신 자리는 CCTV의 사각이라 이씨의 등만 보였습니다. 다만, 출입구는 정확하게 찍혀 있어 이씨가 중간에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면서 밖에 나갔다 온 장면, 김씨가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와 계산하고 나가는 장면, 김씨가 호프집을 나가고 난 후 이씨가 황급히 호프집을 빠져 나가는 모습이 찍혀 있었습니다.

한편 4차 술집은 형사들의 방문이 잘 먹혔들었는지 사장님은 더 이상 협조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예상 대로 그 이틀 뒤 영장실질 심사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씨의 진술과 제3자의 진술 및 CCTV 내용이 상당히 다르고 오히려 김씨의 진술이 이들과 부합하다는 점을 강조했고, 사건 현장은 유흥가로 늦은 밤에는 택시들이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기때문에(밤늦게 현장에 가본것이 주효했습니다) 이씨의 말대로 이씨가 4차 호프집에서 강제 키스를 피해  뛰쳐나가 도망가서 택시를 잡으려 했다면 김씨가 술값을 카드결제하고 쫓아가는 사이 충분히 택시를 타고 출발할 수 있었으며, 모텔의 규모가 작아 이씨가 소리지르고 저항했다면 모텔 주인이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 등을 강조했습니다. 이에 더해 3차 호프집 사장님에게 들은 것을 토대로 수사기관이 변호인의 증거 수집을 위법한 방법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도 힘을 주었습니다.
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경찰은 "우리 망했다. 고추가루 친 거까지 다 들통났다"라고 했습니다. 도대체 경찰이 김씨에게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뻔히 보이는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도 불구하고 위법하게 증거 수집을 방해하면서까지(소위 고추가루를 치면서까지) 무고 사건을 끌고가는 이유가 뭔지 정말 알 수 없었습니다.


김씨는 영장 실질 심사가 있던 그날 저녁 2박 3일 동안의 유치장 신세를 끝내고 풀려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김씨는 반년이 넘게 두어번의 검찰 조사를 더 받은 후에야 무혐의 처분을 받았습니다. 그 동안의 김씨의 마음 고생은 말도 못 했습니다. 2박 3일의 유치장 생활 역시 트라우마로 자리잡은 것 같았습니다. 
덧붙여 무혐의 처분의 이유에 기재된 이양의 무고혐의에 대한 판단은 '혐의없음'이었습니다. 무고한 사람도 없고 강간한 사람도 없는 셈인데 김씨는 고초를 당했습니다. 김씨는 "억울해서 못 살겠다"며 원통해했습니다.
아, 그리고 김씨가 무혐의를 받으면서 알게 된 것인데, 처음부터 비협조적이었던 모텔 주인은 그래도 경찰에게는 "김씨와 이씨가 평범하게 와서 투숙했으며, 김씨는 얼마 안 있다가 바로 나갔고, 김씨와 이씨가 투숙한 방에서 소리를 지르거나 했으면 카운터에 다 들릴 수 밖에 없는데 큰소리가 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합니다. 역시 이 자리를 빌어서라도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사건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저는 성범죄로 형사사건이 진행될 경우 양측이 입는 피해의 불균형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이 사건에서 김씨는 실제로 2박 3일을 유치장에 갇혀 있었고, 호프집 점원과 사장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꼼짝없이 사전 구속에 실형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직장에서 체포된 것만으로도 김씨가 직장을 잃을 수도 있었고 구속을 당했다면 가정은 풍비박산났을 것입니다. 게다가 실형을 받았다면 그에 이어지는 신상정보 등록, 고지, 공개로 인해 그는 가족들과 함께 살 수도 없을 지경이 되었을 것입니다.

무고를 당하는 것
반면 이씨의 경우 무고에 관하여 무혐의로 결정된 이상 아무런 손해도 없습니다. 물론 멀쩡한 직장동료를 강간으로 고소하였다는게 직장에 소문이 났을테니 더 이상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쎄요. 이 사건도 그렇지만, 여성이 술에 너무 많이 취해있었다는 등의 이유로 사실관계를 정확히 인지 하지 못 하는 상태에서 고소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성범죄의 경우 특히 추행이 아니라 강간인 경우 피고인이 유죄가 아니라면 고소인이 무고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고한 사람도 없고 강간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강간 혐의자가 무죄 판결이나 혐의 없음 처분을 받더라도 고소한 여성이 실제로 무고로 처벌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 하였고, 무고하였다는 것을 수사기관에서 인정한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벌금형 정도로 가볍게 끝나고 말았던 것이 저의 경험입니다. 
대부분의 성범죄의 경우 특히 추행이 아니라 강간인 경우
피고인이 유죄가 아니라면 고소인이 무고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무고한 사람도 없고 강간한 사람도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수사기관의 행태에 대한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사건에서도 김씨는 경찰의 수사과정에서 '감히 너 따위가 이씨와 어울리기나 하느냐'는 식의 모욕적인 추궁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성범죄 수사과정에서 고소인인 여성이 젊고 이쁜 반면 그에 반해 피의자인 남성의 외모나 학력이 별 볼일 없는 경우 이런 식의 모욕적인 추궁을 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이 사건에서만 드러난 것일뿐 일상적일 수도 있지만 수사기관이 피의자측의 정당한 증거 수집행위를 방해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수사관행들은 분명히 문제가 있는 것이며, 제도적으로 이를 제한할 방법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까지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고사건을 아무래도 많이 다루다보니 시선이 다소 치우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무고가 심각한 범죄임과는 별개로 성범죄 역시 미워해야 마땅한 범죄행위입니다. 다음포스팅에서는 성범죄 사건의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어볼까 합니다.